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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세종대왕 인간경영 리더십
 maximlee  | 분류 : 리더·리더십 | HIT : 759 | VOTE : 139 |
세종이 삶과 죽음에 대해 다른 어떤 이들보다도 일찍 자각하게 된 것은 가까운 많은 사람들의 죽음 때문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기억(금융·증권부 기자)

사람들의 마음을 사는 일은 치(治)의 처음이고 끝이다. 세종은 백성들이 자기 곁으로 다가오길 기다리지 않고 그들 곁으로 먼저 다가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먼저 말을 걸고, 먼저 모범을 보이고, 먼저 민생을 파악하고 느끼고, 백성보다 먼저 아파하고, 먼저 행동에 옮기는 것이다. -최기억

어린 시절, 피로 얼룩진 권력 투쟁을 지켜본 세종은 ‘허무’를 통해 인간에 대한 연민을 인간경영의 출발로 삼았다. 태조의 3남이었지만 백성의 안위를 위해 누구보다 왕이 되기를 갈망하였던 세종은 즉위 후 시대가 자신에게 요구하는 바가 무엇인가를 골몰히 연구하고 그 방법을 간구하는데 열성을 다했다. 세종은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한 방법으로 농업 생산력 향상에 혼신의 힘을 쏟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과학기술의 발전이 시급함을 느꼈다. 그리고 훌륭한 인재만이 이 나라와 백성을 구하는 길임을 깨닫고 인재를 발굴, 육성하고 장려하였다. 오로지 나라와 백성만을 생각한 세종은 최고의 권력자로서 지켜야 할 근본을 학문을 통해 연마하였다. 항상 몸을 낮추고 삼가며 자신의 의견을 섣불리 주장하기보다는 경청하는 데 귀를 기울이고, 조금의 흐트러짐 없이 생각을 가다듬고 경계하는 데 있어 방심하는 법이 없었다. 또한 어떠한 경우에도 희망과 가능성을 버리지 않는 세종의 끊임없는 도전과 인내는 진정 지도자가 갖추고 되새겨야 할 필수덕목이라 할 수 있다. -최기억

세종은 수많은 학자들을 밤낮으로 몰아붙이고 끊임없이 감시하고, 다그쳐 나름대로 열심히 해서 올린 결과물을 땅바닥에 내팽개치며 ‘이 정도밖에 못하느냐, 나가서 모두 죽어라’고 가슴에 못을 박으면서, 눈물과 땀과 피로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는 전대미문의 역작을 만들어냈다. -최기억

세종은 22세에 왕이 되었다. 스스로가 부족함으로 몸서리를 쳤지만 기실 자신만큼 공부한 사람도 이 나라에서 찾아보기 힘들다는 자부심도 강했다. 세종이 남들보다 많은 공부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보고 싶은 귀한 서책들을 무한대로 구해 볼 수 있는 신분 덕택이었다. 세종이 세자로서 누린 유일한 호사가 있다면 책에 관한 것이었다. -최기억

어느 날 세종이 학사들에게 물었다. “경들은 고되고 힘들지 않은가?” 한 젊은 학사가 왕의 이런 물음에 당당하게 대답하였다. “전하, 신하가 고달파야 백성이 편안한 것이옵니다.” 왕은 그의 말이 고마워 눈물이 핑 돌았지만 이를 애써 참으며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나는 하나의 원이 있다. 백성들이 원망과 억울함에서 벗어나며, 농사짓는 마을에서는 근심의 탄성이 영원히 그치도록 하여 그들에게 ‘살아가는 즐거움’을 이루어주고자 하는 것이다. 너희 신하들은 지극한 나의 마음을 바로 알아주기 바란다.” -최기억

탁월한 조정력으로 태평성대를 이룩한 세종대왕의 업적은 무엇보다 훌륭한 인적지원을 활용했기 때문이다. 세종대왕이 이토록 사람을 잘 이끌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세종은 아버지인 태조가 권력 기반 확립을 위해 피 흘린 골육상쟁과 반목 그리고 질시의 궁궐을 상생과 화합의 분위기로 반전시켜야만 했는데, 세종은 훌륭한 인재만이 개혁의 힘임을 느끼고 인재 발굴에 힘썼다. 때문에 즉위하자마자 수차례 과거를 시행했고, 이렇게 해서 발탁된 인재들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함과 동시에 혹독하게 몰아붙이고 감시하고, 다그치기를 반복했다. 이 같은 세종의 리더십에서 주목할 점은, 태종의 카리스마적인 전략과는 반대로 따스함과 강함을 적절히 조절했다는 것이다. 또한 사람에 대한 편견을 갖지 않았던 세종은 작은 재능이라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재주가 뛰어난 자들의 작은 허물은 감싸안는 관대감을 보여주는 등 때로는 혹독하게 때로는 한없이 따스함으로 신료들을 이끌었다. 그러나 간신에 대해서만큼은 어떤 것도 예외를 두지 않고 철저히 구분해내는 것에 주의를 기울였다. -최기억

장영실은 원래 천한 신분인 동래현의 관노였다. 그의 아버지는 중국에서 귀화한 사람이고, 어머니는 기녀였다. 손재주가 뛰어나고 머리가 비상해서 어려서부터 농기구와 금속을 다루는 일에 탁월했다. 태종 때 추천을 받아 대궐로 들어와 각종 허드렛일을 돕던 솜씨 좋은 청년이었다. 세종은 그의 이름을 여러 사람에게 들었다. 그는 총명한 머리와 소박한 성격으로 세종을 사로잡았다. 세종은 왕이 되고 장영실을 내감으로 불러들였고, 대신들의 극구 반대에도 불구하고 상의원의 별좌로 제수하게 된다. 종6품의 벼슬로 일종의 별정직과 같은 형태인데 궁정 기술과학자로서 장영실의 지위를 보장해준 것이다. 종6품은 천문학자로서의 서운관 전문직인 천문학 교수나 고을 책임자인 현감 벼슬과 같은 지위다. 일개 관노에게 그런 자리가 주어진다는 것은 왕조가 만들어놓은 엄격한 신분제도와 과거제에 의한 인재 등용 정책에서는 물론 상상할 수 없었지만, 세종은 장영실의 성실성과 천재성에 매료되어 파격적인 조치를 취한 것이다. 천재적인 자질을 인정해줄 뿐만 아니라 신분과 출신에 얽매이지 않는 인재의 발탁은 세종의 인간경영의 백미다. -최기억

리더란 희생과 자기 전범(典範, 본보기)을 보여야 하는 고달픈 자리다. 그래야 부하가 따른다. 리더의 품성과 성격과 어떤 노력을 하는지는 부하들이 귀신같이 더 잘 안다. 사람을 움직이는 기술은 결국 잔꾀가 아니라 리더의 전인격적인 수행의 과정에서 나오는 것이다. -최기억

나라는 백성으로서 기본으로 하고 백성은 먹는 것을 하늘로 여긴다. 농업은 의식의 원천이니 왕도정치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바이다. -세종

우리 모두 여기서 죽을 각오로 일하자. 이 땅의 백성과 조상과 부모 그리고 우리의 후손들을 위해 여기서 일하다가 모두 같이 죽자.(자정에 집현전을 전격적으로 방문해 학사들을 모아놓고서 한 말) -세종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글자의 기록에서 시작된다. 기록이 없는 시대는 유사시대에 들지 못한다. 우리나라에도 정음 이전에 이미 글자의 기록을 남겼다. 그러나 이 기록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살아 움직이는 모습과 그 마음가짐을 잘 전해주지 못하고 있다. 향가와 같은 우리말의 기록은 그 분량이 너무나 적은데다가, 그것마저도 그 당시의 언어로 복원하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또 많은 한문 서적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으나 이 기록들은 마치 중국 사람의 눈에 비친 우리나라 사람들의 모습과 감정을 그려놓은 것같이 느껴진다. 한 민족의 언어와 그 민족의 사고방식은 밀접하다. 한문의 기록은 중국적인 사고방식에 끌리지 않을 수 없도록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 겨레의 진정한 역사는 훈민정음의 창제와 더불어 시작될 것이다. 비로소 조선 사람의 살아 움직이는 모습이 바로 우리 눈앞에 나타날 것이며, 비로소 조선의 마음이 서로 통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 역사에서 이 정음을 만든 것은 가장 중대한 사건이 될 것이다. -세종

충녕대군(세종)은 천성이 총민하고 학문을 게을리 하지 않아 몹시 춥고 더운 날씨라도 밤을 새워 글을 잃고, 또 정치에 대한 대체를 알아 매양 국가에 큰 일이 생겼을 때 의견을 내되 모두 소견이 의외로 뛰어나며, 또 장차 크게 될 수 있는 자격을 지닌 자이니 이제 충녕을 세자로 삼고자 하노라. -태종(太宗, 조선 제3대 왕)

충녕 아우님, 나는 이제 도를 깨쳐 중생의 마음을 구제하는 데 나설 터이니, 아우님은 훌륭한 정사를 펴서 백성의 배고픔과 슬픔을 치유하는 현세의 미륵이 되세요.(출가하며 세종에게 당부한 말) -효령대군(세종의 둘째 형)

총명하고 생각이 뛰어나도 어리석은 듯함으로 지켜야 하고, 공덕이 천하를 덮더라도 겸양하는 마음으로 지켜야 한다. 용맹이 세상을 진동하더라도 겁내는 듯함으로 지켜나가며, 부유함이 사해(四海)를 차지했다 하더라도 겸손함으로써 지켜야 한다. -공자

비록 편안하다 이를지라도 태평함만을 믿는 것은 곧 쇠약하고 혼란됨이 퍼지게 하는 소치이다. 금일의 편안함만 믿고 후일의 우환을 생각하지 않는 것은 옳지 않다. -손자

비스마르크 재상은 황제인 나보다 모든 면에서 월등한 인물이었다. 그의 훌륭한 정치철학과 일의 추진, 전략적 사고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탁월했다. 처음에 다른 사람들은 내가 그를 기용하면 황제인 나의 자리를 넘볼 것이라고 충고했다. 나는 그러한 우려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나보다 나은 그가 세운 공으로 인해 결국에 칭송은 임금인 내가 듣게 된 것이다. -빌헬름 1세(독일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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